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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7. '흔한남매'가 준 교훈
    카테고리 없음 2020. 8. 12. 10:01

    '흔한남매'가 준 교훈

     

    "아빠 아빠 오늘은 내가 책 읽어줄게!"

    "응? 뭔데?"

    "이거 이거 진짜 웃기다? 아빠도 진짜 웃길 거야. 내가 한번 읽어준다. 알았지?"

     

    퇴근 후 거실에서 아이와 탁구를 쳤다. 눈치 없는 아빠가 내리 2세트를 이겨버려 아이의 기분은 성난 파도 같았다. 덩달아 나도 기분이 상해 집안은 싸늘함이 떠다녔다. 답답함에 식사를 마치고 아이에게 자전거를 타자고 제안했다. 얼마 전 두발자전거를 배워 오르막 내리막을 지나는 걸 좋아하는 걸 알아서였다. 아이는 주춤하더니 따라나섰다. 아이는 신나게 질주했고 나는 열심히 달렸다. 산책 후 기분을 풀어줄 겸, 젠가 보드게임을 했다. 내리 3판을 아슬아슬하게 졌다. 밑밥을 깐 이유는 책을 한 권 읽어주기 위해서다.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나는 하루에 동화책 한 권을 아이와 함께 본다. 작년 5월부터 시작했는데 주 중에만 읽는 걸 원칙으로 정했다. 아이의 기분을 살피며 "책 볼까?"했더니 그러자고 했다. 갑자기 흔한남매 2권을 들고 와 재미있다고 자기가 다 읽어주겠단다. "진짜? 아빠가 잘 들을게~"하고 답했다. 아이는 손으로 책의 여기저기를 가르치며 우는 듯 웃으며 말풍선을 읽었다.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흔한남매는 펭수의 선배쯤 된다. SBS 웃찾사로 시작해 현재 EBS와 유튜브로 방영한다. 유튜브 구독자는 205만 명이고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. 우리 아이는 초등학생이 된 걸 인증하듯 TV로 잠깐 보고 책으로 사달라고 졸랐다. 아이가 읽어준 책의 소제목은 '집에 귀신 있는 척, 해보았다'라고 쓰여있었다. 내용은 대략 이렇다. 여동생의 생일을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하는 오빠. 그 선물은 귀신이 나왔다고 장난을 치는 것인데, 사실은 동생 생일은 다음 달이었다는 것. 연기력이 조금 부족한 아빠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진짜 웃기다며 맞장구를 처 주었다. 그랬더니 다른 책을 하나 더 보여주겠단다. 속으로는 '이상하다? 글자 읽는 걸 엄청 싫어하는데...'라며 좋다고 했다.

     

    우리 아이는 글자 읽는 걸 싫어한다. 오죽하면 한글보다 상형문자인 한자가 좋다고 했다. 고심 끝에 찾은 방법이 동화책 읽어주기였다. 의례 책은 아빠가 먼저 보자고 해야 읽었다. 그때마다 책을 싫어할까 봐 "책 보는 거 재미없어?"라고 물어보면, "책은 좋은데 글자 읽는 건 싫어."라고 했다. 그래? 그럼 오늘은 아빠가 다 읽어줄 께라며 한 권을 겨우 읽었다. 그런 아이가 책을 직접 읽어주겠다니 어리둥절했다. 아이가 책을 읽을 때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. 얼굴엔 생동감이 넘쳤다. 다른 사람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워 보였다.

     

    두 개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. 한 개를 더 읽어주겠다는 걸 진정시키고 잠자리에 들게 했다. 아이가 침실에 들어가고 탁자에 앉아 '자발성'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다. 그동안 억지로 읽힌 책들이 수동적이었다면, 오늘의 경험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었다. 더욱이 자신의 지식을 남에게 알려줄 때 쾌감 같은 것을 느낀 것 같았다. 내가 아이를 존중하지 않고 통제하려 한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. 부모의 역할은 '믿고 기다려주는 것'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 하루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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